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사의의 난 (문단 편집) === [[용의 눈물]] === [youtube(J97sPTGXbV4)] 조사의의 난을 '''거의 처음으로 다룬''' [[사극]]은 [[용의 눈물]]. 사극 용의 눈물에서도 태조 흑막설을 참고했는지, 태조 이성계가 조사의와 의기투합하여 난을 일으킨 것으로 묘사한다. 다만 조사의가 이방원에게 반란을 일으킨 동기를 묘사하기 위해서인지 이방원과의 악연으로 인해 중앙 조정에서 쫓겨나 복수를 결심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여기서도 조사의는 [[안변군|안변]]부사로 제대로 나온다. 실제로는 [[이성계(용의 눈물)|이성계]]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지만 이 드라마의 [[조사의(용의 눈물)|조사의]]는 [[신덕왕후(용의 눈물)|신덕왕후]]에 대한 은혜를 갚는다는 차원에서 조사의가 이성계의 뜻을 받든 주도 하에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조사의가 난을 일으키고 이성계가 동의해준 느낌이다. 그리고 전쟁의 전개도 [[이방원(용의 눈물)|이방원]]의 친정군은 서북면에서 조사의의 주력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와중에 조영무가 이끄는 별동대가 이성계의 본진인 함흥을 툭툭 건드리는 그림으로 나온다. 여전히 여진족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이성계에게 여진족이 호응하려고 하나 이를 파악한 하륜이 명나라로 직접 가 황제를 만나 여진족을 압박해달라고 요청하며, 황제도 이를 받아들여 결국 여진족은 물러난다. 믿고있던 여진족의 지원이 순식간에 끊기자 애초에 수적으로 열세이던 반란군은 기세가 높다는 걸 이용해 얼른 결판을 내려고 하나 조정에 포섭된 박만의 배신으로 조사의는 사로잡히며, 본거지 함흥도 이숙번 등에게 점령당해 이성계도 완전히 손발이 떨어져나가는 신세가 되며 난이 종료되었다. 결국 이성계는 마지못해 궁궐로 돌아오며, 조사의는 난을 주동했다는 혐의로 처형당한다. 죽기 직전 조사의는 이방원의 추후 행보를 예견하는 독설을 퍼부으며, 그의 말처럼 이방원은 본격적인 외척 박살에 나선다. 원래 용의 눈물의 초기 기획에서는 조사의의 난과 그 이후 연회에서 이방원이 이성계와 만나서 매듭을 짓는 것으로 마무리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인기 등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조사의의 난 이후인 태종 치세와 이방원의 양위 이후 사망까지 그려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